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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32% "한반도 통일 주역은 한국"…워싱턴 평통 설문

워싱턴 메트로 지역 한인들이 가운데에서 한국의 평화통일에 가장 영향을 줄 수 있는 국가로 미국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지난해 보다 크게 줄어들어 주목된다. 이같은 사실은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워싱턴 협의회(회장 홍희경.이하 민주평통)가 이 지역 한인들을 대상으로 한 ‘2011년 조국 평화통일 여론조사’에서 나타났다. 민주평통은 지난 10월 8일 하워드 카운티 한인의 날 축제 때와 10월 22일 코러스 페스티벌에 참가한 한인 525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였고 그 결과를 21일 발표했다. 이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평화통일에 가장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국가는’이라는 문항에 모두 53.2%가 미국이라고 답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문항에 답한 비율 77.9%에 비해 급격히 줄어든 것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평통은 이번 설문조사에서 이 문항 예시에 지난해에는 없던 ‘대한민국’을 넣었으며, 이 항목을 답한 이들의 비율이 31.9%에 달해, 지난해 미국을 꼽았던 이들이 올해 대한민국으로 분산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즉 평화통일에는 역시 한국 자체도 큰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자아개념을 표시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한국의 평화통일의 주역은 역시 한국이므로, 한국 자체가 평화통일의 주역으로서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가 고조됐다는 풀이도 가능하다고 지적됐다. 한편으로는 한반도의 평화통일에는 한국과 미국 두 나라가 중요하다는 인식에 무려 85.1%를 표시한 셈이어서 주역으로서 한국은 미국의 관계가 중요함을 재인식한다는 풀이다. 다음으로는 중국을 꼽은 이들이 13.2%로 3번째를 나타내 최근 부상하는 중국의 비중을 점차 인식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번 설문조사에서는 또 ‘대북포용정책이 남북한 평화증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가’란 질문에 대해서 28.3%는 “보통이다”고 답한 한편 “매우 그렇다”는 16.7%가 지적했으며, 31.4%는 “그렇다”고 답해 무려 48.1%가 동의했다. 또 워싱턴 동포들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종합적으로 볼 때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36.6%가 “보통이다”고 답한 가운데 “매우 그렇다”는 14.7%, “그렇다”는 28.6%로 나타나 전반적으로 43.3%가 긍정적으로 본 반면 19.8%는 부정적으로 본 것으로 나타났다.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서 현재 한국 정부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항목에서는 무려 54.4%가 “대가없는 대북지원 보다는 시간이 걸려도 상생공영원칙 아래 실용과 상호주의로 남북관계에 접근”해야 한다는 항목을 지적했다. 반면 “조건없는 대북지원과 경제교류협력 활성화”란 항목에는 19.7%만이 동의 대조를 보였다. 이밖에 탈북자 문제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방안은 26.1%가 “관련제도를 개선하고 예산을 확보”하라고 답했으며, 국민적 공감대를 조성해야 한다는데 25.5%가 동의했다. 그러나 이에대해 “남한 정부가 신경쓸 필요가 없다”는 항목에서도 2.1%가 동의, 눈길을 끌었다. 민주평통은 이번 조사결과를 한국 평통 본부에 워싱턴 지역 한인동포들의 의견으로 공식 자문할 방침이다. 최철호 선임기자

2011-12-21

"통일기금 조성에 기도·도움 필요하다"

'개신교 통일기금 조성 운동'을 펼치고 있는 한국기독교총연회(한기총) 대표회장 길자연 목사가 뉴욕을 찾아 미주 한인교회는 물론 미국교계에 도움을 요청하고 나섰다. 길 대표회장은 7일 플러싱 대동연회장에서 뉴욕시미국교회협의회(CCCNY) 회장 A.R. 버나드 목사를 비롯해 부회장 장영춘 목사, 사무총장 지미 림 목사 등 임원진과 만나 남북한 현황을 설명하고 통일기금 조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길 회장은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등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이지만 통일로 가는 길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지금은 통일을 준비해야 할 때로 이를 위한 통일기금이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길 회장은 이날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통일을 대비해 '통일세' 신설을 내놓은 상태지만 현재 추진이 지지 부진해 개신교계가 나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통일은 반드시 온다. 통일세 등 현실적인 방안을 준비할 때가 됐다. 사회 각계에서 이 문제를 폭넓게 논의해 주었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길 회장은 "통일기금 조성은 한국교계가 통일을 준비하기 위한 첫 걸음"이라며 "지난 100여 년전부터 사랑을 나누고 힘을 보태 준 미국교계가 이를 위해 기도하고 많은 도움을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한인교회 동참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미국교회협 회장 버나드 목사는 길 회장의 설명이 끝나자 북한교회 상황과 남북한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교회가 주도권을 갖고 통일기금 조성에 나설 수 있느냐 등에 대해 묻는 등 관심을 나타냈다. 이날 만남은 미국교회협 부회장으로 있는 장영춘(퀸즈장로교회) 목사가 마련했다. 장 목사는 "당장 미주에서 모금운동이 시작되지 않지만 이를 위해 기도하고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길 목사는 통일기금 조성과 처치스테이 등 공약을 내세우고 최근 한기총 대표회장으로 당선됐다. 정상교 기자 jungsang@koreadaily.com

2011-02-07

[살며 생각하며] 통일은 가까이 왔는가

최근 한국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통일세를 검토할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통일에 대비해서 세금을 거둘 때가 되었다는 말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 그 동안 요원하게만 여겨지던 통일이 어느새 아주 가까이에 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민족이라면 누구나 염원해 온 통일은 문자 그대로 분단되어있던 남과 북이 합쳐 하나의 국가를 이루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7세기 후반 신라가 당나라의 힘을 빌어 삼국을 통일한 이래 1200년 가까이 통일국가를 형성하며 살아왔다. 돌이켜 보면 언어, 풍습, 문화가 같은 우리 민족이 외부의 물리적인 힘에 의해 남북으로 갈라진 채 60년 넘게 자유왕래가 불가능한 상태로 살아왔다는 것은 지극히 부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남북 분단으로 발생한1000만 이산가족의 고통은 세계에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민족적 비극임에 틀림 없다. 조선 왕조 말 쇄국으로 나라의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 근대화와 국력신장에 소홀했던 조선은 국력이 쇠잔해져 우리보다 불과 30여년 먼저 서양의 신문물을 받아들여 근대화한 일본에게 국권을 침탈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나라를 잃고 36년간 일본의 지배하에 살아온 한민족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이 승리함으로써 1945년에 해방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해방의 기쁨도 잠시,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남과 북에 미군과 소련군이 각각 진주함으로써 한반도에는 조국분단의 먹구름이 드리워지기 시작하였다. 자본주의 종주국인 미국과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이 한반도에서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한반도는 미소 냉전의 각축장이 되었으며 결국 남과 북에는 이념과 사상이 다른 두 개의 정부가 들어서게 되었다.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함으로써 냉전은 열전으로 변하였다. 만일 개전 초에 압도적으로 우세하던 북한군이 남한을 완전 점령하였다면 한반도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 의해 통일되었을 것이다. 또한 유엔군의 참전과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어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을 때 중공군의 참전이 없었더라면 한반도는 지금쯤 온전히 대한민국 땅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팽팽하게 맞선 강대국간의 힘의 균형에 의해 전쟁은 3년여를 끌었으며 수백만의 사상자를 내고 1953년 휴전이 되었으나, 남과 북은 전쟁 전의 38도선과 비슷한 휴전선을 중심으로 다시 갈라서게 되었다. 그 후 60여년 간 분단상태는 더욱 고착화되었으며 그사이 수 없이 많은 이산가족들이 가족재회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나야 했다. 그 동안 평화통일에 대한 논의가 많이 있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무력에 의한 것이었으며 베트남 통일 역시 무력통일이었다. 독일통일은 무력에 의한 것은 아니었으나 국력이 월등하게 우세한 서독이 동독을 흡수통일 한 것이었다. 현실적으로 분단된 국가가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 한 통일은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로가 자국의 체제를 고수하려고 들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어느 한쪽의 힘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지든가 약해져야만 통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남과 북의 국력차가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벌어진 지금이야말로 어쩌면 남북통일을 이룩할 수 있는 기회인지도 모른다. 남과 북의 우리 민족이 슬기롭게 대처해서 이 절호의 기회를 살림으로써 한반도에 통일된 민주국가가 세워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채수호 자유기고가

2010-09-20

[중앙시론] 독일의 통일세 이야기

최근 유럽의 독일 경제성장에 관련된 뉴스가 홍수를 이루고 있다. 독일의 2분기 경제성장율이 무려 2.2%를 기록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1년 성장율로 따지면 경이적인 8.8%의 경제성장을 이루어 냈다는 얘기가 된다. 이는 어느 시장분석가도 예상하지 못한 수치다. 올해 초 유럽의 경제뉴스는 온통 그리스의 재정파탄에 관련된 뉴스였으나, 이 그리스가 참여하고 있는 유로존 16개국 중 가장 부자나라인 독일이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경제성장을 이루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20년 전 베를린의 브란덴부르그문이 무너진 다음 해 베를린을 찾았다. 과거 서독이었던 하노버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베를린으로향했다. 그 당시 일년 전만 해도 적성국가인 동독의 땅을 통과해 베를린으로 가는 여행은 꿈도 꿀 수 없었지만, 세상은 하루 아침에 변해있었다. 그러나 고속도로를 달리는 앞 차들은 심한 매연을 뿜고 있었다. 자동차 제조에 관한한 세계 최첨단의 기술을 지니고 있는 벤츠의 나라 독일 고속도로에 심한 매연을 뿜고 달리는 승용차를 만난다는 사실은 납득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바로 내 앞에서 달리는 독일 차량 번호판이 붙은 차의 심한 매연은 현실이었다. 코를 막고 “저 차를 빨리 추월해 달라는”는 아이들의 애원을 몇 번이나 들어주었지만, 동독 차들의 매연을 피할 길 없었다. 그 당시 공산주의 국가중에서는 가장 경제가 발전했고 잘산다는 동독의 차가 왜 이 모양일까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은 너무나 쉬웠다. 2차대전 막바지 한국의 운명을 결정지었던 포츠담 회담의 장소인 포츠담은 동독 땅이었다. 많은 지적 호기심과 역사현장을 방문하기를 즐겨 했던 내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포츠담을 찾았지만 흔적은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다시 호텔이 있는 베를린 역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돌아갈 수가 없었다. 동서남북을 분간할 수 없는 독일땅. 그것도 이제 막 통일된 동독땅에는 도로 안내 표지판이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마침 지나가는 젊은 여성에게 베를린 반호프를 가려고 하는데 어떻게 갈 수 있냐고 묻자 그녀도 지금 그곳으로 가는 중이란다. 무조건 내 차에 타서 길잡이가 되어 달라고 간청했더니 흔쾌히 응한다. 그녀에게 우리는 한국인인데, 너희들 정말 부럽다. 통일이 되었으니 얼마나 좋겠느냐고 영어로 말을 걸었다. 그녀의 대답은 나를 놀라게 했다. “부러울 것 하나도 없다. 통일 후 내 소득의 10%를 통일세로 내야 한다. 즉 그만큼 수입이 줄어들었으니 좋을게 없다”는 그녀의 말을 듣고 한참 동안 멍해졌다. 그렇다, 돈이 문제다. 통일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는 문제다. 결국 서독 국민들이 부담해야 한다는 요지다. 또한 그녀의 친가는 모두 서독에 살지만 외가는 동독에 산단다. 통일 후 처음으로 외삼촌 외사촌들을 만났지만 그 기쁨도 잠시 서독인들이 타는 차가 너무 좋단다. 그래서 자기들은 서독 벤츠를 사겠다는 얘기를 스스럼 없이 하길래 물었단다. “아저씨 그 차 살 돈은 어디서 나오는데요?” “응 당연히 국가가 벤츠를 주어야지.” 내가 살 돈은 없지만 국가가 당연히 내가 원하면 주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 젊은 서독여성은 기가 차서 말을 더 이상 하지 않았단다. 동독사람들은 당연히 국가가 아파트를 주어야 하고 일자리를 주어야 하고 벤츠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단다. 평생 공산주의 체제에서 살아온 그들에겐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독일은 미국처럼 연방공화국이다. 게르만 민족들이 만든 국가들이 하나로 뭉쳐 연방국가를 이룬 역사적 사실이 별로 그렇게 오래 전의 일은 아니다. 그러다 히틀러가 저지른 2차대전 패배 후 동과 서로 나뉘어졌을 뿐이다. 쉽게 말하면 통일은 정치인들이 만들어 내는 거창한 명분이지 서독 국민 개개인의 생활에 영향을 주는 명분은 아니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통일 후 부자나라 서독은 자국 통화와 휴지에 불과한 동독 화폐를 3대1이라는 교환비율로 바꿔주는 혁명적인 일을 단행했다. 불을 보듯 뻔한 재정적자, 1960년대 이후 그 동안 막대한 무역흑자로 쌓아두었던 돈들이 하루 아침에 통일비용으로 사용되고 말았다는얘기다. 그로부터 정확히 20년이 지나 독일의 성장엔진은 다시 날개를 달았다. 독일은 제조업이 강한 나라다. 올해 초 그리스 및 스페인, 이태리 등 유로존 국가들의 재정파탄 위기로 유로화가 약세통화로 돌아서자 독일의 수출은 날개를 달았다는 분석이 정확하다. 2.2%라는 2분기 성장도 수출이 견인한 결과라는 얘기다.

2010-09-08

[시론] 한국은 포괄적 통일방안 갖고 있나

이명박 대통령은 제65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통일세'를 제안했다. 그는 산업화.민주화를 넘어 선진화의 길을 제창하고 한반도 통일의 전략으로 '평화공동체.경제공동체.민족공동체'를 부르짖고 그에 이르는 현실적인 방안으로 '통일세'를 밝힌 것이다. 이에 대한 국내외의 논평은 엇갈린다. 먼저 북한의 대남 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통일세 구상이 '전면적인 체제대결 선언'이라고 비난했고 한국의 야당 측은 북한에 대한 '흡수통일론'으로 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비해 국내 보수 계층과 국외의 반응은 오히려 긍정적이다. 한나라당은 이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천명한 바와 같이 정부가 구체적인 방안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고 "통일되었을 때에 쓰려고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북한의 붕괴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고 뉴욕타임스는 "북한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심화되고 있는 시점에 이뤄진 것"이라고 논평했다. 이들 상반된 논평을 접하면서 두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첫째는 통일준비 방안이 좀 늦은 감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다. 서독의 정치가들과 사회 지도자들은 독일 통일준비를 위해 2차 세계대전 종식 후 분단된 직후부터 설계해 왔다. 소련의 해체는 독일의 통일에 비해 그리 오랜 기간 준비를 하지는 않았지만 고르바초프가 권력을 잡은 후부터 최소한 수년은 준비해 왔다는 것이 그의 자서전은 말해 주고 있다. 둘째는 경제 통일안을 비롯해 좀 더 포괄적이고 구체적인 통일 방안의 일환으로 통일세가 구상 제안됐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연방의회 의원들도 사석이지만 북한체제 붕괴에 따른 콘틴젠시 플랜을 한국 정부가 마련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요즈음 곧잘 던진다. 한반도 통일방안은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운을 띄워 던져 버리는 정치적.정책적 애드벌룬이 아니라 좀 더 포괄적이고 구체적이고 실용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에 대해서도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통일세를 포함한 한반도 통일 방안을 빠른 시일 내에 마련해 보자는 것이다. 그래도 보수주의적 색채를 띠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정권을 잡고 있는 지금이 가장 적절한 시기라 여겨진다. 두 번째 의견은 한반도 통일방안은 정치.경제.사회.국제 등 제반사항을 총 망라한 전략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주관기관을 선정해야 할 것이다. 통일부.청와대 안보위원회.학계의 여러 북한학연구소.헌법기관인 민주평통자문회의 등이 한반도 통일방안구상을 주도할 기관들이다. 그 중의 한 기관이 주관부처로 조직되어 국내외 한국민들의 의견을 총 망라한 방안을 정립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민주평통은 국내외로 1만8000명이상의 위원으로 조직되어 있어서 한반도 통일방안구상에 크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반도 통일방안은 포괄적이어야 한다. 특히 한반도를 위시한 열강들의 국제관계에 관련된 사항은 주의를 요한다. 지난 8월 16일 미 국방부가 의회에 제출한 '중국의 군사.안보력 평가' 연례보고서에 "중국은 한반도의 혼란으로 역내 안보역할이 바뀔 경우 군사적 전개나 배치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고하고 있어서 한반도의 비상시 중국의 군사력 이동을 배제할 수 없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에 대한 한국정부의 전략정책도 마련돼 있어야 할 것이다.

2010-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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